우선 이번 2020년 8월 글은 2018년 7월 26일에 제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재작성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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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였던 고려 말의 왕에 대해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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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에서 퀴어축제가 열렸습니다.
그 행사 때문에 찬성과 반대 집회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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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자와 반대자 모두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따라 그렇게 합니다.
하기 싫고 하기 싫다 (사실 겁이 난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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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이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들 중 지금 쓰고 있는 게시판은 말 그대로 제 생각이라는 점을 잠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될 수도 있고 역사적 사건을 연구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리고 본격적으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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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먼저 LGBTQ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LGBT라는 용어는 대표적인 성소수자를 일컫는다.
그 외에도 많지만 대표적으로 4가지만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사랑으로 표현하기로 하였으니 불편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립니다.
L(레즈비언):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사람
G(게이): 남자를 사랑하는 사람
B(양성애자); 성별에 관계없이 남녀 모두를 사랑하는 사람(바이섹슈얼)
T(트랜스젠더): 생물학적 성별과 정신적 성별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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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여기에서 트랜스젠더 성향을 가진 사람을 설명할 때 젠더전환자로 잘못 표현했습니다.
예를 들어 연예인 하리수처럼 성전환 수술을 받고 트랜스젠더로 편입됐다는 걸 알았다.
성소수자에게 욕먹고 수정한 내용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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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느낄 수 있니
사실 저는 LGBT가 아니고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성소수자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이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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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공민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영화 쌍화점은 공민왕을 소재로 촬영했기 때문에 알려져 있다.
배우 송지효, 주진모, 조인성이 주연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고려 말 충숙왕의 아들로 태어난 공민왕의 치세는 흔히 원나라의 간섭기로 일컬어지는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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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그들은 세계에서 흙을 가장 잘 먹는다는 유명한 징기스칸의 후예입니다.
징~징~징기의 칸은 “흙먹는거 세상에서 제일 짱이야”라고 말하는 장난꾸러기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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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족이 건국한 나라입니다.
아시아를 넘어 동양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서유럽까지 잠식하고 있는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국토를 가진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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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막강한 원나라마저 힘을 잃기 시작하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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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려라는 작은 아시아 국가에게 원나라와 맞서는 것은 매우 어려운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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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공민왕은 원나라의 간섭을 타파하고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친원파를 배척하고 쌍성관아를 탈환하였다. 고려의 화주(현재 함경남도 영흥)가 북쪽을 직접 다스린다.
조금 덧붙이자면 고려 25대 충렬왕과 고려 30대 충정왕 모두 충자를 앞세운다.
나는 원나라에 충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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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31대 공민왕은 원나라에 충성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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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민왕은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신돈이라는 인물을 임명한다.
그는 호사스러운 승려이자 고려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라는 양면에서 극도의 비판을 받는 인물이다.
물론 마지막은 실행

그리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위화도의 반환으로 고려를 장악한 뒤 공민왕 다음의 왕인 우왕과 장왕을 상대했다.
그 근거는 우왕과 장왕이 왕씨가 아닌 신돈의 자식이니 신씨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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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새 돈 이야기는 그만하고 공민왕이 어떻게 성소수자가 되었는지 자세히 파헤쳐 보자.
1365년(공민왕 14), 원나라의 노국공주가 임신하려던 아이를 낳다가 난산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노국공주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노국공주가 죽은 뒤 정사를 뒤로하고 그녀를 추모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그 결과 나라는 다시 흐려졌고 왕은 점차 지능을 잃었습니다.
그 후 그는 Vanya라는 여자를 만나지 만 곧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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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자제위(고려 공민왕 때 궁궐에 있던 관청)라는 관청을 두었다.
자제위는 왕을 호위하고 섬기는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실상은 한 남자와 사랑에 빠져 노국공주를 잃고 여자에 대한 사랑을 잃은 공민왕이 세운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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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공민왕은 자제위의 일원인 홍륜이라는 남자에게 살해당했다.
공민왕은 후사가 없어 후계자가 필요했다.
그러나 공민왕은 여자를 사랑할 수 없게 되자 자제위가 첩을 임신시키기 위해 동침을 허락했다.
그러다가 첩 중 한 사람인 익비라는 여자가 임신하게 되었고, 공민왕이 친아들이 아닌 홍련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적법성이 문제될 것을 두려워하여 홍련을 모두 죽이려고 했고, 그의 갱.
하지만 그 사실을 눈치챈 홍련 일당에 의해 살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 후 홍련 일당은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이인임에 의해 모두 숙청되었다.
고려는 공민왕이 죽은 후 3명의 왕을 더 세우며 막을 내렸다.
우왕, 창왕, 공양왕 삼왕인데, 공민왕의 아들 우왕과 손자 장왕은 왕씨가 아니라 신씨의 아들이라 하여 쫓겨났다. 신돈 태조의 시조 이성계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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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공민왕은 어디까지가 성소수자일까?
제가 내린 결론은 게이와 양성애자 사이 어딘가인 것 같아요.
게이와 바이섹슈얼에 대해서는 위에서 간략하게 설명하였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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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은 한 여인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다른 여인과 포옹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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